그래서 뭐 이것 저것 알아맞춘다. 성공하는 법 알려준다. 미래를 예지해준다. 합격 불합격 여부 알려준다, 미래의 남편이 어떤 사람일지를 봐준다 등등은 거의 대다수가 허황된 이야기임. 그래도 어쩔 수 없기도 함. 살아가려면 돈은 벌어야 하니까. 본디 무당이라는 것은 남을 도와주어야 하는 팔자를 타고난 존재임. 헌데 그것을 어기고 저런 수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고민을 좀먹으며 돈을 챙기는 그런 무당들을 반무당이라 함. (익히 알려진 선무당의 경우엔, 아예 신내림조차 받은 적 없이 무당행세 하는 게 선무당.) 그 무당의 반응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내게 일어난 경우는 2가지 중 하나로 보임. 첫번째 경우는 낙태아령. 다른 원한령, 악령의 경우와 달리 낙태아령의 경우엔 정말 신력이 아주 강하거나 노련한 무당이 아니면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함. 그 이유는, 원한령(악령)등의 경우에 불러서 달래고 혹은 혼내는 등 하며 위로하여돌려보내야 하는데 낙태아령의 경우엔 골때리는 것이, 이름이 없음. 거기다 풀어야할 ‘한’이라는 것도 실질적으로 딱히 없음. 진짜 뭐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는 거임. 령을 위로할 방법이라곤 그 아이의 부모가 함께 직접 천도재를 지내는 수밖엔 없음. 그런데 이 천도재라는게 아까도 이야기 했듯이 노련한 무당이 아니면 불가능. 이 천도재를 할 수 있는 무당은 현재로선 한국에서 몇 안 됨. 따라서 비용이 상당히 비쌈. 최소 500이상 들어간다고 봐야할 것임. 과거엔 그래도 몇몇 영험한 스님분들이 저렴한 값에 거의 봉사하는 차원에서 해주고 다니기도 하고 그러셨는데 이제는 그런 분들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함.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정신이 멍했음. 500… 이걸 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가뜩이나 부모님께 등골쪽쪽 하고 있는데 “엄빠 ^^; 저 낙태아령 씌였대여. 천도재라는 걸 해야하는데 최소 500정도 들어간대여. 돈 점 주세여 헿” 이라고 할 수는 도저히 없었다. 설령 500이라는 돈을 구한다해도 천도재를 지낼 이 아이의 부모는 대체 어디서 어떻게 알아낸단 말인가? 보통 낙태아령의 경우엔 거의 100이면 100%확률로 그 부모근처의 사람들만 해코지하기에 알아내기가 쉽다고 함. 주변에 누구 중절수술 등을 한 사람 없는지 알아보라고 하였음. 아니, 근데 나는 이 안경을 줏은 뒤로 이상한 일이 벌어진 거 같은데… 두번째는 서양에선 그래도 좀 있을지 모르지만, 동양에선 매우 희귀한 케이스로, 애초부터 인간이라 부르기 힘들 정도의 무언가라는 거임. 원한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귀신처럼 령 같은 것도 아니기에 사연이 없이 오로지 인간에게 이유없이 해악만을 끼친다는 거임. 이른바 악마라 불리는 것인데, 정확히는 악으로 뭉친 사념체 같은 것이라 함.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데, 이 경우엔 사람 개인 한 명에게서 파생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악의 사념이 뭉쳐서 나오는 기운 같은 것으로 특정 이유나 원한, 사연 같은 것 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묻지마 해악만을 끼침. 다소 생소한 개념일지 모르나 고대 중국의 사상가들은 이것을 알고 있었다함.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깨끗하고 정갈한 건강한 기운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악 사념체가 뭉친 것과 반대로 정의 기운이 뭉친 것도 있다함. 그 경우엔 사람에게 이로운 쪽으로만 영향을 주는, 선의 사념이 뭉쳐서 나오는 기운 같은 게 있는데 이게 과거 맹자 같은 사상가가 말한 호연지기라는 거임. 실제로 고대중국의 사상가들 몇몇은 저러한 ‘기운’의 존재를 눈치채고 애초부터 저 기운을 선 쪽으로 많이 기울게 하는 데에 힘썼으며, 또 그것에 관한 원리 역시 많이 서술했다고 함. 그와 파생되는 여러 가지 것으로 그 유명한 음양오행이나 태극이론 등이 나오는데 아무튼 대충 정리하자면, 그러한 여러 ‘기운’들이 잘못 되어 악 쪽으로 빠져버리면 서양에서 말하는 이른바 ‘악마’같은 것이 된다는 거임. 사실 ‘악마’라는 건 귀신처럼 특정한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아까도 말했듯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이유없이 묻지마해악만을 끼치는 일종의 부정하고 잘못된 ‘기운’같은 거라는 이야기. 아무튼 둘 중 무엇이건 간에, 그 반무당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였을거라 함. 예시를 들어보면, 원한령 같은 귀신이 씌인 사람의 경우엔 강도와 함께 들어오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음. 이 경우엔 그 강도를 꾸짖거나 달래거나 하면서 잘 풀어내어 그 붙은 사람에게서 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일의 해결이 가능한 반면에 저 둘 중 한 가지에 해당하는 경우라면 내가 강도와 함께 들어오는 게 아니라 마치 안전핀이 풀린 수류탄을 갖고 들어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거라는 거임. 수류탄에 뭔 설득이 통하고 꾸짖음이 통함? 그냥 잘못되면 나 뿐만 아니라 그 무당까지 함께 작살나는 거임. 따라서 그 무당으로썬 그저 벌벌 떨며 제발 나가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셨음.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는데 무속인은 아니지만 뭔가 그럴 듯했음. 사실 철학이라는 게 삶과는 전혀 관련없는 뜬구름 잡는 소리들만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론들만 주고 받는 그런 실생활에 하등 도움 안되는 학문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보니 뭔가 정말 도인 같기도 하고 능력자 같기도 하고 그랬다. 역시 사람은 내공이 깊고 봐야해; 짱짱맨; 아무튼 오늘 당장은 만나기 어렵고 금요일에 시간을 비워놓을 테니 그때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하셨음 나로선 정말 한 줄기 희망의 빛과도 같은 것이라 그저 고맙단 말을 연신 내뱉은 후에 그때 만나기로 하고 약속을 잡았음. 그런데 그렇게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으니 갑자기 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 분께서 말한 낙태아령이건, 악마건 간에 이건 분명 둘 다 보통의 상식을 초월하는, 일반적으로 통하는 귀신이나 악령 같은 건 댈 것도 아닌 심각한 문제임이 분명했다. 나 혼자서 지금 이 상태로 2일을 더 버텨야 된다는 건데 그동안 아무 일 없이 버틸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진짜 하나같이 악질이었다. 보통 들어본 풍문으론 귀신은 환각이나 환청으로 사람을 놀래키거나 스트레스를 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건 아주 악질 중에서도 악질. 환각, 환청 정도가 아니라 아예 중요한 걸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게 해버렸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첫날 전봇대부터 시작이었다. 분명 내가 아무리 정신을 놓았기로서니 앞에 있는 전봇대를 못 볼 리가 없다. 다음 날엔 차도 아니고 그 큼직한 버스를 못봤다. 그 기사 할아버지께서 제대로 멈추지 않으셨다면 난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그 택시기사 아저씨도 그렇다. 어? 아? 음? 어어..? 이런 말을 자주 한 것과 가끔 급정거가 있던 걸로봐선 나 뿐만 아니라 내 주변 대상까지 뭔가 보여야 하는 걸 안보이게 할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뭔가 그 기사아저씨는 생명에 위험을 느끼고 돈도 안 받고 날 쫓아낸 거 같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진짜 오싹했다. 이건 그냥 귀신의 장난이나 빙의 수준이 아니잖아? 걸리면 그냥 뭐 무섭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바로 이승 하직하는 거잖어? 생각해보니 오싹해졌다. 나 혼자 2일간 무사히 버텨낼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