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 뭐야 이거… 위로 뛰다가 말도 안되게 소름끼치는 걸 발견했다. 이 어두컴컴한 곳에서 유일하게 빛을 내고 있는 그것. 그건 초록색이었고, 이런 글씨가 쓰여져있었다. 비 상 계 단 흔히 아파트 계단에서 볼 수 있는 그것이었다. 그러고보니 여기 풍경이 낯설었다. 우리집 아파트였다. 뭐야 이거?? 꿈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순간 불이 켜졌다. 그 왜 있잖아. 껌껌할 때 움직임 감지하면 저절로 켜지는 센서등. 센서등이 켜지니 눈이 약간 부시면서 계단에 있는 잡다한 먼지들과 누가 씹다 뱉어서 계단에 늘러붙어가지고 거무튀튀하게 변한 껌들까지 모든게 소름끼치도록 리얼하게 눈에 들어왔다. 뭐야 이거. 꿈이 아냐? 그 순간 다시 심장이 철렁거림과 함께 미치도록 소름이 끼쳤다. 지금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고? 아, 설마… 다시 밑을 바라보니 그 검은물은 계속 꾸역꾸역 올라오고 있었다. 불이 켜진 상태에서 보니 더욱 소름끼쳤다. 그 물은, 정말로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투명하지 않은 검은색 물이었다. 그 검은색이라는게 물감의 검은색이 아니라 , 정말로 물 속이 너무나 깊고 그럴 때 비치는 뭔가 심연속의 검은색 같은 그것이었다.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은근히 빨라서, 난 위로 냅다 달렸다. 숨까지 차오른다. 힘도 든다. 맨발이라그런지 발바닥마저 아프다. 너무나 생생하다. 이건 꿈이 아니다. 이럴 수가… 꿈이 아니라면 이건 진짜 큰일이다. 어쨌든 도움이라도 청해야한다. 난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달려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위층의 집에 물론 새벽이라 민폐겠지만 도움을 청하려 했다. 그런데 ??? 없었다. 집이 없었다. 원래 한 층 올라가면 엘레베이터가 가운데 있고, 양 옆에 집이 있어야하는데 집만 없었다. x01호 x02호 이런 식으로 엘레베이터 양 옆에 집이 있어야되는데 집이 없이 그저, 그냥 막힌 벽이었다. 아니 이럴수가. 이거 분명 우리 아파트인데, 이런 구조는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뭐야 이거 대체 뭐야 아래를 보니 물이 어느새 꾸역꾸역 근처까지 올라와있었다. 저 물에는 그냥 닿기만 해도 뭔거 절대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다시 허겁지겁 뛰어서 한 층 더 위로 올라갔다. 없었다 한층 더 위로 올라갔는데도 집이 없이 그저 그냥 벽이었다 뭐야 이게. 이게 말이 되나? 엘레베이터도 저렇게 있는데 집이 없다는게 말이 돼?? ??? 너무나 어처구니 없었다. 망연자실함에 눈물이 왈칵 나올 것만 같았다. 그와중에도 센서등은 너무나 정확하고 똑똑하게 작동이 되었다. 불은 아주 잘 켜졌다. 위를 보니 센서등에 붙어 팔락거리는 이름모를 날벌레까지도 보였다. 그런 모든 리얼한 상황은 이 모든게 내게 꿈이 아니라고 말하주는 것만 같아서 더욱 절망적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양 옆을 보는데 역시 집이 없었다. 그냥 막힌 벽이었다. 이럴수가. 그 순간 집이 있어야 할 자리에 그 막힌 벽이 얼마나 소름끼치는지… 정말 너무 소름끼쳐 눈물이 왈칵 나올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도 검은물은 꾸역꾸역 올라오고 있었다. 허겁지겁 뛰어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역시 한 층 더 위로 올라와도 집 같은 건 없었다. 다시 뛰어 올라갔다. 센서등의 불이 켜지고 역시 집은 없고, 그저 벽이고, 검은물은 조금씩 차오르고 뛰었다. 그저 뛰어 올라갔다. 계속 뛰었다. 처음엔 내가 물보다 훨씬 빨랐지만, 그것도 계속 올라가니 내 체력이 점점 고갈되었다. 점점 내 속도는 검은물에게 따라잡히고 있었다. 미칠듯이 숨이차올랐다. 옆구리가 아프고, 땀이 마구 나며 온몸이 고통스러웠다. 특히 맨발로 뛰어서 그런지 발바닥이 너무나 아팠다. 그 물은 그런 나의 사정 같은 건 아랑곳 없이 똑같은 그 속도로 계속 차오르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 결국 네 발로 걷는 짐승처럼 손까지 쓰며 계단을 헉헉 거리며 올라갔다. 얼마쯤 올라갔을까. 더이상은 저 물이 차오르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올라갈 자신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숨이 차오르고 힘들어졌을 때, 처음으로 벽이 아닌 문이 보였다. 그런데 보통의 집 문 같이 생긴 그런 문이 아니었다. 뭔가 80년대식, 한참 구식의 단순한 디자인 철문, 게다가 먼지도 많이 쌓여서 사람 손길이 닿지도 않은 그런 문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걸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저 물이 차오르는 것에서 달아나야한다. 그런 생각에 난 생각도 않고 아랑곳없이 그 문을 잡고 열었다. ??? 어어?? 이거 잘 안 열린다. 뭐지. 뭐지. 물은 거의 바로 밑까지 올라왔다 뭐야 이거 왜 안 열려 뭔가 삐걱삐걱 거리긴 하는데 잘 안 열렸다. 아마도 문 자체가 워낙 오래되어 잘 열리지 않는 듯 싶었다. 아, 안돼 제발 열리라구 열려! 문 손잡이를 거칠게 잡아당기고 발로도 쿵쿵 차고 온갖 생쇼를 다 한 결과 간신히 문이 열렸다. 옥상이었다. 이제 더이상 올라갈 수가 없다 이런… 물은 거의 차올라서 결국 옥상까지 스며들어오고 있었다. 앞을 바라보자 저~ 앞에 뭔가 낭떨어지 같은 게 있었는데 그 뒤에 다시 여기 옥상처럼 무언가 건물이 있었다. 낭떨어지 같은게 좀 무섭긴 했지만 그래도 뛰어넘으려면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저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물이 따라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잖아? 물은 무조건 아래로 떨어지는 법이니. 어느 덧 물은 거의 바로 뒤까지 따라와있었다. 겨우 이 정도 물에 내가 익사할 일도 없고, 그저 발만 적셔지는 것이겠지만 저 소름끼치는 물엔 내 신체의 일부도 닿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망설임 없이 저 건물 반대편을 향하여 뛰어갔다. 힘껏 뛰면 뛰어넘을 수 있겠지. ??? 그런데 내 마음이 너무 급해서였을까. 빠르게 뛰던 난 발이 꼬여 자빠지고 말았다. 너무나 아팠다. 정신차릴 수 없을 정도로 아팠지만, 이대로 넘어져있으면 저 물이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에 아파할 틈도 없이 냅다 다시금 달렸다. 그리고 건물 반대편으로 뛰려던 순간. 어??? 그런데 낭떨어지 아래가 아까 내가 봤던, 그 검은 암흑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낭떨어지 같은게 없었다. 아파트 옥상의 평범한 난간이었고, 그 난간 아래는 아찔할 정도의 높이차이로, 한참 아래에 놀이터가 있었다. 어두운 새벽에, 아무도 없는 놀이터. 반대편 건물? 그딴 것도 없었다. 아파트 다른 동 건물의 옥상은 훨씬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내가 도움 닫기해서 힘껏 뛴다고 닿을 수 있는 그런 거리가 아니었다. 하.. ? 뒤를 돌아보았다. 물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내가 아까 와서 밝혀져 있던 센서등이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는지 자연스레 다시 툭 하고 꺼질 뿐이었다. 그 센서등이 꺼지자 옥상 문 안의, 내가 나왔던 그 아파트 계단 안은 칠흑같은 어둠 속으로 변해버렸다. 그러자 그제서야 뭔가 머릿속으로 이해가 갔다. 그 악마인지 뭔지가, 나를 여기까지 넣은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날 죽이려고. 아까 실수로 넘어져서 정신이 들지 않았더라면, 보이는 대로 힘껏 도움닫기하여 반대편 건물로 뛰었더라면, 난 아마 공무원 시험의 스트레스와, 집안 가족들과의 불화가 겹쳐 그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 아버지에게 크게 혼난 바로 그 날 새벽에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걸로 그렇게 난 잊혀졌겠지 그렇게 내 인생은 끝났겠지. 그저, 시험압박의 스트레스와 가족들과의 불화로,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걸로, 그렇게. 진짜 완벽한 죽음이다. 소름끼쳤다. 그래. 그 악마인지 악령인지 귀신인지 뭔지가 삽시간에 날 여기까지 밀어넣은거다. 지금 여기 죽음의 바로 앞, 아파트 옥상 난간 앞까지… 그럼 그 ‘무언가’는… 지금 내 근처에 있는 건가? 죽기 바로 직전에 안 죽었다고 다시금 호시탐탐 내 옆에서 날 노리고 있을까? 이렇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억울한 죽음을 당해야 하는 건가? 모르긴 몰라도 지금 내 근처에 있다는 거 아냐? 여기 아무도 없는 이 깜깜한 한 새벽, 아파트 옥상에서?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한 겨울 새벽의 추위만해도 내 몸을 덜덜 떨리게 만드는데, 이 모든 소름끼치는 사실이 날 공포로 더욱 옥죄여 더욱 떨리게 만들었다. 어딨지? 내 목숨을 노리는 그건 어딨을까? 저 문 뒤 암흑 속에서 날 노려보고 있을까? 아니면 내 옆? 아니면 내 뒤 지금 옥상 난간 뒤에서 날 잡아당기려고 하고 있을까? 엄마…. 아빠…. 살려줘요…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건… 이건 아니잖아… |